전통이 지구를 지킨다면 : 미래를 향한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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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닭
댓글 1건 조회 283회 작성일 22-12-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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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통예술인이 공연, 축제 등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을 돌아보고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를 지닌 우리의 전통예술이 다시 예술의 근원으로 돌아가 가치를 성찰하고 지구를 지키는 발걸음을 따라가본다.

짧게는 이삼백 년, 길게는 천년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의 전통에는 오래된 미래가 담겨있다. 시간을 넘어 공간 구조 또한 제시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문화를 담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는 우리만 아니라 전 인류의 전통예술이 지닌 가치 중에서도 으뜸이다. 자연을 닮으려는 노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예술이라 여겼으며, 작품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ESG와 전통예술'이라는 문제의식은 전통예술 지니고 이어온 중요한 힘의 상실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전통예술의 대부분은 인위적인 무대를 설치하지 않는다. 멍석을 깔면 소리판이 되고, 탈을 쓰면 마당판이 되고, 한삼을 들어 올리면 바로 춤판이 되고, 꽹과리를 들면 대동굿판이 즉각 창조된다. 각종 기계장비를 설치하느라 돈과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공간은 변형되고 발견되며 상상된다. 소리꾼에 의해, 춤꾼에 의해. 단순하고 소박하다. ESG 같은 어려운 말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환경
적이고 사회적이다. 쓰레기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쓰지 않는다. 내용은 가히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다. 소리 한 가락, 몸짓 하나로 땅과 하늘을, 사람과 사람을, 이승과 저승을 잇는다.
마을과 공동체에서 만들어지고 사랑받아왔던 우리의 예술이 대규모 극장과 박물관, 갤러리로 이동해 획일화되고 상품화된 지금, 예술인은 자신의 예술을 스스로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인류에게 다가오고 있는 기후위기, 출산 절벽 등 우리 사회와 생태계 전반의 상상하기조차 싫은 미래의 징후들을 다시금 예술의 근원으로 돌아가 성찰하라는 메시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 주고받는 가치
환경으로부터, 사회를 향해




위의 두 캠페인은 에너지와 관련한 것이다. 전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석탄이나 석유가 사용되고, 탄소가 배출된다. '탄소중립'이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태양광을 사용하든, 풍력을 이용하든 탄소는 배출된다. 그 어떤 에너지 생산 방식에서도. 그런데 '어떤 에너지'가 친환경 에너지로 포장되고, 거기에 예술이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는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그린피스와 함께 한 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노력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근접 국가인 우리로서 매우 엄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앞으로 인근해에서 나오는 어패류에 방사능이 검출될 수 있다. 방사능이 몸에 축적되면, 특히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통해 그 심각성을 충분히 알게 됐다. 후쿠시마 또한 현재 매우 심각한 진행형임에도 언론에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 사건을 차치하더라도 핵에너지가 가져올 미래는 무엇이며, 인류가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3대 핵사고(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는 10년 주기로, 핵발전소 최대 보유국 순서대로 발생했다. 더구나 우리는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 국가다. 예술인은 예술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대중에게 조금 더 친근하고 밀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 예술인의 인지도나 이미지를 활용해 파급력과 확산성을 가질 수 있다면 마케팅의 수단이 된다 한들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SG라고 하면 흔히 '환경 보호'로 직결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환경(혹은 사회)의 범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은 범위이다. 가령, 역사, 전통, 민족성, 전설이나 민담 같은 것도 하나의 환경이고 사회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마을마다, 계곡마다 얽힌 이야기는 시간을 정지시키고 공간과 결합해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왔다. 개발 위주의 도시 중심 문화, 사회와 결렬한 이기적인 개인주의는 이야기도 파괴한다. 그 결과 놀이와 노래들이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가락은 획일화됐다. 이런 이야기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풀어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인들도 있다.


창작국악그룹 '그림(The林)'이 '고블린파티'와 함께 제작한 춤추는 음악극 ❬거인 앙갈로❭는 전통의 현대화와 동시대가 처한 문제를 깊이 있고 재미있게 접근한 작품이다. 필리핀 민담 「바닷물은 왜 짤까」와 한국의 전래동화 「소금을 내는 맷돌」을 결합해 만들어졌으며 위기에 처한 인류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가야금으로는 붉은 개미의 움직임을, 종이로는 벌 소리를 내고, 종이로 된 지전과 레인스틱을 이용해 바람과 빗소리를 낸다. 악기로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는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안에 우정, 배려, 믿음 등 여러 감정을 공감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간의 태도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과를 만드는건 과정
태도로 완성하는 ESG의 가치


한국아동국악교육협회 '창작집단 더늠'이 환경문제를 「수궁가」로 풀어낸 창작판소리 ❬토끼가 어떻게 생겼소❭는 ❬제1회 서울국제환경연극제❭에서 만난 작품이다. 환경을 주제로 공연을 하는 단체가 공연이 끝난 후 환경오염 물질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면 안될 것이다. 이는 진심 어린 창작 태도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연의 식자재를 먹고 살 듯 전통예술의 모든 소재는 자연으로부터 왔고, 장인들은 예술성을 지니도록 정성을 다해 작품을 가공하고 창작해왔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연을 마치고 태우는 지탈이나 박탈 또한 환경오염과는 거리가 먼 소재이다. 이 작품에는 재활용 소품이 사용되진 않았지만, 예술인들은 환경문제를 작품 주제로 다루는 것과 더불어 정크 아트(junk art)처럼 폐기물을 자원으로 재활용하거나 업사이클링하는 소품 제작에도 관심을 지녀야 할 필요가 있다.
환경을 고려한 창작은 무엇보다도 예술인의 삶이 함께해야 한다는 면에서 곤혹스러운 작업이다. 사실 예술인뿐 아니라 누구도 매일 쏟아지는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원전 사고 희생자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로부터 떳떳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전통예술 분야에서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소비문명과 한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우리로서는 지구 생태계의 묵시적 경고를 단순한 변화로 여기며 창·제작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연극은 제의와 환상이 결합할 때에야 축제성을 획득하게 된다. 제의는 과거에 대한 것이고, 환상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다. 환상이 없는 축제는 천박한 배설에 불과하고, 제의의 부재는 상업적 소비를 촉구한다. 광범위하게 만연된 허무주의로 살자면 뭐든지 마음껏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의 의무는 희망하는 것이라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말한다. 오랜 시간 흘러온 전통을 아끼고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미래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노력일 것이다. 청소년과 함께 기후위기를 고민해보려는 광주시립창극단의 작은창극 ❬무등산 산군이❭의 기획의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 세대와 얼굴을 마주하며 공연하고 있다. 전통이 동시대 문제의식과 함께하는 것은 박제된 문화재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이러한 창작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 세대들로부터 배운 최고의 전통적 가치일 것이다. 





환경을 주제로 한 연극·마임·인형극·춤·음악 등 40여 편의 공연과 워크숍, 포럼, 공연예술캠프로 구성된 ❬2022 국제환경연극제❭가 경북 영덕에서 펼쳐졌다. 영덕은 우리나라 동해안에 있는 도시 중 대표적인 청정지역이다. 이를 지역의 이미지로 만들기 위한 주민의 의지가 국제환경연극제를 영덕에 유치하도록 만들었다. 이 연극제에 초청된 '놀이패한라산'의 ❬세경놀이❭는 눈여겨볼 만하다. 세경놀이는 농업신인 자청비 '세경'에 대한 의식과 연주 놀이를 겸한 제주도의 무당굿놀이다. 제주도는 지금 골프장을 비롯해서 제2공항을 건설하려는 개발과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놀이패한라산'은 파괴되는 제주의 공동체와 자연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주 신화와 제의의 재창작을 통해 드러낸다. 10여 년이 넘게 지속된 ❬세경놀이❭의 미덕은 지역 문제를 지역의 이야기와 전통예술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이수자이기도 한 이들의 오랜 몸짓과 연물 가락이 마당굿놀이 형식으로 시대와 함께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를 포함해서 온 세계는 지난 수십 년간 아까운 시간을 터무니없이 허비해왔다.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해서 미증유의 수습하기 어려운 환경적, 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는 이미 「침묵의 봄」이 나온 1960년대 초, 혹은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가 출판된 1970년대 초 이래 충분히 예고돼왔던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 동안 두 차례나 발생한 '오일쇼크'는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등 화석연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산업경제가 조만간 수명을 다할 것임을 명확히 경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화석연료에 너무도 깊게 중독된 나머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계속해서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면서 점점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버렸다." 



오직 성장만이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낸 최악의 결과가 우리의 눈앞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지구는 인간에게 늦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인간은 지구촌 생태위기를 지금이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다만 탐욕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연과 화해하고,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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